안녕하세요!
오늘은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라는 책을 가져와 봤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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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보후밀 흐라발(1914~1997)는 체코의 국민작가라고 한다. 그는 마흔 아홉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소설을 쓰기 전에 철도원, 보험사 직원, 제철소 잡역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기록으로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지만 그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도 전업작가가 아니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계속 한 것으로 추측된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오로지 글로 깨우치고, 글로서 삶을 나아가는 '전업작가'보다는 입을 땅에 빚지고 생업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우려 나오는 생애전선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조금 더 선호하는 편인 듯싶다. 어쩐지 그래야만 짧은 인생이지만 더 깊은 지혜를 압축적으로 배울 수 있을 것 같다고나 할까.
책의 주인공은 삼십 오년째 폐지 압축공으로 일해 온 노년의 남성이다. 저자 또한 실제로 폐지 압축공으로 일했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일종의 자전적 소설로 보인다. 주인공은 책을 분쇄하기 전에 책을 살핀다. 괜찮은 책이나 희귀한 책들은 따로 빼어 그 책이 필요할 것 같은 지인들에게 선물한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뜻하지 않은 다독으로 높은 교양을 쌓게 된다.
#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삼십오 년째 책과 폐지를 압축하느라 삼십오 년간 활자에 찌든 나는, 그동안 내 손으로 족히 3톤은 압축했을 백과사전들과 흡사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중략)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는 이제 어느 것이 내 생각이 어느 것이 책에서 읽은 건지도 구분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중략) 사실 내 독서는 딱히 읽는 행위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중략)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 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주인공은 맥주를 굉장히 좋아해서 맥주를 마시면 그간 읽었던 책의 내용들이 머릿속에 떠올라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소크라테스, 헤겔, 노자, 예수, 칸트 등등.
주인공은 꿈이 하나 있다. 은퇴를 해서도 조그마한 압축기를 사서 집에 설치해서 이 일을 취미삼아 계속하는 것이다.
그렇게 책, 맥주에 빠져 들어 살고 있는 주인공에게 어느날 신식 폐지 압축기가 그의 작업장에 들어온 것을 목도한다. 신식 기계는 기능이 압도적이라서 더 이상 책을 가려낼 필요도 - 아마 너무 표지가 두꺼워서 표지를 별도로 뜯어내야 한다든지, 너무 두꺼워서 반쯤은 잘라내서 집어넣어야 한다든지 - 아무런 사전 조치(?)도 없이 훌륭하게 어머어마한 폐지들을 순식하게 압축해 낸다. 더 이상 자신과 같이 사려깊게 책을 골라낼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신식 기계의 옆에는 기계를 작동하는 젊은이들이 히히덕거리면 서 있다. 아니나 다를까, 작업장에서 언제나 자신을 윽박지르던 소장은 이제 폐지 압축업무는 할 필요가 없으니 종이를 만들어내는 곳으로 부서를 옮기라고 한다. 아무런 활자도 없는 하얀 종이만을 만드는 공간. 그런 곳에서는 일을 할 수가 없다.
주인공은 평소 좋아하는 맥주를 잔뜩 마시고 자신이 일하는 지하 작업장으로 내려와 스스로 압축기 안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소설은 마무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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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주인공은 어떤 사람들과도 즐겹게 이야기를 나누지 않습니다. 언제나 지하 작업실에서 일을 하거나, 아니면 근처 선술집에 가서 맥주를 마실 뿐입니다. 하지만 고독해 보이는 그의 머릿속은 읽었던 책들의 내용들으로 시끌벅적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가 삶을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이기도 한 듯싶습니다.
그가 마지막에 보여준 행동은 산업화시대 초기에 일어난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영국의 공장지대에서 일어난 노동자에 의한 기계파괴운동)과 대비되어 보입니다.
짧은 소설이지만 특히 AI 시대의 본격적인 도래에 대한 우려가 많은 요즘과 같은 시기에 꽤나 묵직한 질문을 던져 주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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