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소설 '스토너'로 유명한 존 윌리엄스의 또 다른 장편소설 '부처스 크로싱'을 가져와 봤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게요! (리뷰에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결말은 배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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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스 크로싱
방금 책을 반납하고 왔다. 차로도 - 편도로 - 30분이 넘는 거리를 다녀오니 왜 이렇게까지 빌리려고 했을까, 문득 자문해 본다.
이 책은 한두 달 전쯤 영화평론가 이동진님이 올해의 소설 베스트 4로 꼽은 책 중에 하나이다. 덕분에 서점가는 웃음을 짓지만 - 나같이 (이동진과 달리 넘쳐나는 책을 보관할 공간이 없어) 더 이상 책을 사지 않겠다고 결심하였거나 -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는 사람들은 울상이다. 거의 모든 도서관에서 대출이 된 상태이고 심지어 예약도 줄을 서 있다. 그러다가 우연히 딱 한 곳에 이 책이 있었다. 당시에는(약 한 달 전쯤이었다) 누군가 대출해 가기 전에 기필코 빌려야겠다고 이를 악물고 차를 몰고 갔었다. 도서관에 찾아가는 것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스마트도서관(*무인으로 책을 대출하고 반납하는 도서관)이라는 곳을 처음 이용해 본 탓이었지만. 아무리 검색을 해도 책이 없어서 다행하여 이것저것 다시 찾아본 끝에 - 동일 지역에 딱 한 군데가 있는 줄 알았는데 - 알고 보니 동일 지역 내에도 두 군데의 스마트도서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튼 헛걸음을 한 탓에 책을 대여했을 때의 나름의 뿌듯함이 있었다. 그렇지만 처음의 결심과는 달리 책을 읽는 것은 더뎠다. 게다가 원래의 대출 기간인 2주를 훌쩍 넘겨 연체 기간이 무려 21일에 다다른 오늘 아침에야 책을 반납했다. 그리고 오기로(?) 책을 대여했던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스마트도서관으로 가는 길이 험했다(그러니까 책이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운전을 시작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은 탓에 극도로 혐오하는 좁은 길의 연속이었다.
이렇게까지 장황하게 책을 빌리고 반납했던 일을 늘어놓는 이유는 이 과정이 소설 '부처스 크로싱'과 미묘하게 닮아 있는 탓이다.
부처스 크로싱은 미국 서부의 어느 산골 마을 이름이다. 앤드루스는 도시 생활에 어떤 공허함을 느껴 하버드를 자퇴하고 부처스 크로싱을 찾는다. 들소 가죽 유통업자인 맥도날드에게 아버지의 편지를 전한다(과거 앤드루스의 아버지는 같은 동네에 살았고 아버지는 목사였고 맥도날드는 당시에도 상인이었다). 아들의 잘 봐달라는 내용이지만 맥도날드는 어렴풋이 아, 그 목사라고 희미하게 기억할 뿐이지만 그래도 마침 서류 정리가 번거로우니 자신을 도우라고 제안하지만 앤드루스는 사냥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맥도날드는 그런 짓은 미천하고 미개한 짓이라고, 곧 철도가 놓일 테니 부지를 사 놓으라고, 젊은이는 미래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앤드루스는 끝내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들소 사냥꾼 밀러를 찾아간다.
밀러는 술집에서 일행과 술을 마시고 있다. 밀러는 길을 가다 우연히 발견한 들소떼 수천 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평야를 언젠가 가리라는 꿈이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네비가 있는 것도 아닌 데다 부처스 크로싱에서 걸어서 한 달도 넘게 가야 하는 곳을 밀러의 말만 믿고 선뜻 자원(총기류, 마차, 마소 등)을 지원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 10년이 흘러버렸다. 그런데 앤드루스가 선뜻 그 돈을 지원해 주겠다고 말한다. 무심하고 공허했던 밀러의 눈이 반짝이며 밀러는 자신의 오른팔과 다름없는 찰리와 가죽을 벗기는 슈나이더, 그리고 앤드루스를 데리고 여정을 시작한다.
그들은 일정을 당기기 위해 강가를 따라 걷지 않고 황야를 가로지르기로 결심한다.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황야에게 급기야 모든 물, 심지어 들고 온 위스키마저 다 떨어져 버린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들소 가죽을 싣고 와야 하는 말과 소마저도 죽음 끝에 다다른다. 남은 물을 짜내어 마소를 먹이는 장면은 읽기 안타까울 정도로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이동진 평론가가 이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는다, 미국 서부에 가서 렌터카를 빌려 운전하며 이 책을 읽으면 베스트겠지만, 적어도 강원도 드라이브 여행을 하며 읽기를 추천할 정도로). 겨우 기적적으로 물가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장면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오래된 탈수분 상태에서 갑자기 물을 들이키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 물 냄새를 맡으면 미쳐 날뛸 것 같은 - 마소를 잡아 끄는 대목이다. 아직까지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내가 마소가 된 것처럼 입안이 침이 고일 정도다.
몇 주가 흘렀지만 밀러가 말하는 들소떼 가득 찬 평야는 보이지 않는다. 일행은 의심의 눈초리로 밀러를 쳐다본다. 그럴 때마다 밀러의 눈빛은 무심하고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여정이 계속될수록 이상하게 밀러를 응원하게 된다. 밀러가 말하는 그곳이 제발 나타나기를 바라는 기분이 든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모세를 보는 기분이랄까.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되었을 때, 그러니까 가지고 온 음식도, 강가에서 챙겼던 물들로 모조리 다 떨어졌을 때, 들소떼를 발견한다. 밀러는 역시, 내 기억이 맞았어, 라고 속으로 좋아하고 일행 모두 - 심지어 나 또한 - 환호를 지른다. 정말 밀러가 말한 대로 수천 마리의 들소가 서식하고 있고 밀러는 미친 듯이 사냥을 시작한다. 가죽을 벗기는 슈나이더(그리고 초보 앤드루스가 그를 돕는다)를 비롯한 밀러의 오른팔 찰리 또한 이만하면 되었다, 고 돌아가자고 말을 할 정도니까. 그렇지만 밀러는 조금만 더, 라고 말할 뿐이다. 일행은 더 말을 보태지 않고도 안다. 밀러는 저 들소들 마지막 한 마리까지 잡을 때까지 떠날 생각이 없다는 것을.
그러다 어느 날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평소보다 이른 눈이다. 슈나이더가 외친다. 그러니까 내가 돌아가자고 했잖아. 그러나 분통을 터트릴 틈도 없이 눈보라가 일행을 덮친다. 세찬 눈보라 속에서 일단 들소 가죽 안으로 들어가 바닥에 바짝 몸을 붙인다. 꼬박 하루하고도 밤 동안 몰아닥친 눈보라 속에서 앤드루스가 용변을 해결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장면도 나름 압권이다.
눈보라가 지나가자 슈나이더는 지금이라도 돌아가자고 주장하지만, 밀러는 고개를 젓는다. 이미 눈이 엄청나게 쌓여서 가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그러면 어떻게 하냐고 묻자, 밀러는 여기서 겨울을 나야 한다고 한다. 앤드루스가 겨울을 나야 한다면 언제까지냐고 묻자 눈이 완전히 녹고 가죽을 실은 마차가 제대로 굴러가게 땅이 다져지려면 5, 6월은 되어야 한다고 밀러는 답한다. 5, 6월.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부처스 크로싱을 떠난 게 9월. 이 움막 속에서 과연 겨울을 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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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은 '부처스 크로싱'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책에서 앤드루스가 하버드를 중퇴한 이유, 굳이 부처스 크로싱을 찾아온 이유, 적당한 직장(맥도날드 휘하에서 서류작업)을 마다하고 들소 사냥을 떠난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기술되지는 않습니다. 아마 앤드루스 자신도 잘 모르지 않을까 싶다. 다만 들소 사냥을 떠나게 되면 그는 그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는 듯싶습니다.
책은 인생의 여러 굴곡, 그리고 그 안에서의 인간의 욕망(단순히 탐욕뿐만 아니라, 공허나 허무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도 욕망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에 대해 탐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존 윌리암스는 살아생전에 총 3편의 장편소설을 썼습니다.
스토너, 아우구스투스, 부처스 크로싱.
앞 두 개의 장편에서는 인물의 청년기부터 죽음까지 일대기를 그리는 반면, 그러기에 부처스 크로싱도 앤드루스의 일대기를 그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들소 사냥이라는 여정 자체가 생동하여 날뛰는 들소가 '생(生)'이고 총상으로 피를 튀기며 쓰러져가는 들소가 '사(死)'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그러니까 존 윌리암스는 삶과 죽음에 평생 관심을 둔 작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그의 또 다른 장편소설 '아우구스투스' 리뷰로 찾아올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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