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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신작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 리뷰

by 북노마드 2024.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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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최애작가 중 하나인 김애란 작가의 따근따근한 신작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가져와 봤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게요! (스포가 나오는 부분 전에 "경고"표시를 해 뒀습니다^^)


 

이제까지 김애란 작가의 글보다 나를 더 감동시킨 글은 없었다. 그녀의 글을 읽고 처음으로 텍스트 하나하나를 잘근잘근 씹어 목울대를 넘겨보고 싶었을 정도니까. 그렇지만 신기한 것은 - 나에게 감동을 줬던 - 같은 글을 지금 다시 읽으며 그때만큼 감동적이지 않다.

이번 그녀의 신작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라는 작품을 읽으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그녀는 글을 잘 쓴다. 그녀의 글이 이전보다 퇴보했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확실한 것은 당시 내가 그녀의 글에서 느꼈던 감동은 그 당시의 내가 내 안에 잔뜩 품은 그리움과 슬픔이 그녀의 글과 맞닿으면서 빚어낸 오묘한 화학적 작용이었다고 믿는다(그녀의 글은 그대로이지만 내 내면이 달라졌을 뿐).

그렇지만 그런 것이 슬프지는 않다. 우연히 만난 영화, 책, 대사, 풍광들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은 기억으로 자리매김하듯이 삶은 우연의 연속이고 그러기에 그것만으로 그녀의 글을 나의 최애로 꼽는 것에 여전히 주저함이 없다.

원래 나는 아무리 좋아하는 영화, 드라마, 책도 두 번 다시 보지 못하는 나름의 고질병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에 너무나 기뻤던 것 같다. 비록 나의 내면의 감정상태와 당시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해도 그녀가 빚어내는 글이 어찌됐든 형질적으로 동일한 내 내면에 다시 한번 화학작용을 일으킬 확률이 높았다고 봤으니까.

작품을 집어 들고는 후다닥- 읽어내렸다. 13년만의 장편소설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활자는 크고 책은 겨우 235페이지에 지나지 않는다. 빼곡한 활자로 편집한다면 100페이 남짓한 중편소설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법하다. 약간 아쉬웠지만 동시에 과연 그녀답다, 고 생각했다. 그녀의 주력은 단편이다. 그녀의 글 호흡이 짧은 것을 안타깝게 여기지는 않는다. 그런 것은 형질적으로 주어지는 것이고, 저마다의 색깔 같은 것이니까.

그녀의 글을 제일 먼저 접한 것은 그녀의 산문 모읍집 "잊기 좋은 이름"에서다. 거기서 지극한 감동을 맛보고 그녀의 소설을 역으로 탐독해 들어갔던 것 같다. 두 번째로 들어든 책이 그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인 "두근두근 내 인생"(2011)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차례 눈물을 훔쳤다. 이토록 따스한 사람이라니. 내가 제대로 봤구나. 그리고 나서 그녀의 단편집에 눈을 돌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장편은 그거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바깥은 여름"이라는 그녀의 단편 모음집을 읽으면서 나는 몇 번이나 본문과 책 표지를 오가야 했다. 같은 작가가 맞는지 인터넷 창에서 몇 차례 찾아봐야 했다. 나에게 바깥은 여름, 은 그녀의 외도처럼 보였다. 그렇지. 따스하고 유쾌한 심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깊은 우물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렇지만 그 다음 단편집 "비행운"을 읽으면서 나는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이렇게까지 비극적이야 한단 말인가. 그녀의 소설은 현실을 여과없이 그려내고, 무엇보다 언제나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일반 사람들로서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가난과 비극의 끝을 그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시선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절대 판타지를 꿈꾸지도 않고, 있는 일상을 지독하게 세밀하게 관찰해 내는 눈이 있었으니까. 그런 것은 눈만 가진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그녀의 손, 그리고 가슴이 같이 하는 것이다.

그녀에 대한 일종의 편견이 생겼으면서도, 첫사랑을 못 잊는 마음 탓인지 그녀에 대한 애착이 여전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신작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기다렸을 때도 이중적인 감정을 느꼈다. 기대가 되면서도 어쩐지 두려웠다. 내가 가진 그녀에 대한 편견이 어느 한편으로 굳어질까 하는 것 때문에. 그 두려움은 사실 제목을 접했을 때부터 커져갔다. 하나가 거짓말이라니... 그러면 안 되는데... 작중 인물들은 서로 진실을 얘기한다고 하지만 어떤 하나는 진실을 감추려고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사람들의 보는 시각에 따라 - 그들은 뼛속 깊이 진실이라고 믿지만 - 제 3자가 보기에는 거짓인 것들이 그려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그녀의 신작을 시작했다. 처음 몇 장을 읽어냈을 때의 심정은 어둡다, 였다. 그렇지만 역시 그녀의 필력은 남달랐다. 어둡고 비극적이라 읽기 싶은 내 목덜미를 잡고 그녀가 나를 소설 속으로 이끌고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녀의 걸음을 따라가 그녀가 가보자 하는 길 끝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있었던 것 같다.

** (경고!!!) 여기서부터는 스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으실 분들은 건너뛰어 주세요!

소설에는 세 명의 소년, 소녀가 등장한다. 사실 면밀히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이름만으로는 성별을 구분하기 어렵다(사실 성별이 필요 없는지도).

엄마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 홀로 남겨진 지우. 지우는 엄마의 남자친구인 선호 아저씨와 단칸방에서 살고 있다. 그렇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선호 아저씨와 언제까지 같이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우연히 용식이라는 도마뱀을 입양한다. 그런 지우에게는 일찍이 자신과 엄마를 버린 친부가 있다.

시한부 인생의 엄마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선고받은 시한보다 더 일찍 세상을 떠나 아버지 호민과 남겨진 소리. 소리에게는 특별한 예지능력이 있다. 남의 손을 만지면(사람이든 동물이든 가리지 않는다) 조만간 그들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같은 반 친구인 지우에게 용식이라는 도마뱀을 방학동안만 의탁받아 키우게 된다.

채운은 영어공부를 열심히 한다. 영어를 배워서 언젠가는 한국을 영원히 떠나 버리고 싶어한다. 영작을 시키는 영어사이트에 접속해서 기계가 묻는 질문에 영어로 대답하면서 하나씩 채운의 비밀이 밝혀진다. 채운의 엄마는 교도소에 있고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 채운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술을 취해 칼을 들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를 말리려다 뒤늦게 정신을 차려보니 채운에 손에 피가 묻어 있다. 경찰이 출동하고 엄마는 자신이 저지른 일이라고 말하고, 채운에게 절대로 비밀을 지키라고 말한다.

지우는 짧은 일상웹툰을 카페에 올려서 호응을 얻게 된다. 첫 번째 호응을 얻은 것은 자신이 키우는 애완 도마뱀 용식에 대한 것이었다. 몇 편을 연재해서 호응을 얻었고, 그렇지만 딱 1편만 올리고 차마 뒷 이야기를 올리지 못 한 게 있다. 바로 [내가 본 것] 이었다. 지우는 그날 밤 채운의 집에서 벌어지는 일을 봤을까?

소리는 죽어가는 엄마는 간병을 하는 것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아침에 등교를 하면서 엄마의 손을 만진다. 눈 앞의 희뿌옇게 변하면 그 사람은 곧 죽는다. 어쩌면 한 두번은 그러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막상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날은 그날을 알아 맞히지 못했다(이게 거짓말일지도?).

채운은 어느날 같은 반 친구인 소리를 아빠의 병원으로 부른다. 우연히 소리의 능력을 눈치 된 채운은 소리에게 아빠의 손을 만져달라고 부탁한다. 정말 안 좋은 일이 예정되어 있다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고. 소리가 병실에 들어간 뒤, 채운을 안절부절하지 못 한다. 혹시나 아빠가 깨어나서 모든 진실을 소리에게 말해 버리지는 않을까. 한참 뒤에서 소리가 병실 밖으로 나온다. 소리는 괜찮다고 입을 연다. 곧 쾌차할 것이라고(이게 거짓말일지도?).

지우는 어느 밤, 자신과 엄마를 버리고 결국 엄마가 자살을 한 모든 책임이 자신의 친부에게 있다고 생각하고는 손에 무엇인가를 감아쥐고는 친부를 죽이기 위해 친부가 근무하는 미술학원으로 향한다. 그지우가 친부를 죽이려다 실패하다 옥상에 올라가 흐느끼고 있을 때 채운의 집에서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옥상에서 지우는 [내가 본 것]을 본 것이다.

소설의 결말은 책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소설을 덮으면서 과연 김애란 작가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토록 비극적이고 현실적이라니. 이런 걸 감히 성장소설이라는 범주에 넣어도 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김애란 작가는 소설의 말미에 화자의 입을 통해 성장에 대한 소설이라는 말을 꺼내 듭니다.

# 누군가 집을 떠나 변해서 돌아오는 이야기, 지우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알았다. 하지만 그 결말을 잘 믿지는 않았다. 누군가 빛나는 재능으로 고향을 떠나는 이야기, 재능이 구원이 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에 몰입하고 주인공을 응원하면서도 그게 자신의 이야기라 여기지는 않았다. (중략) 그런데 그런 것도 성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는데다 거의 표도 안 나는 그 정도의 변화도? 혹은 변화 없음도? - 이중 하나는 거짓말 中 p.232~233

저는 이 소설을 여태까지 나왔던 성장소설 중에 가장 현실을 닮은, 가장 현실적인 성장소설, 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김애란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현실에서 '희망'이라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듯싶어 보이지만, 살아가면서 점점 그 확률이 높아지고 있는 것쯤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녀는 이야기를 통해서 희미하지만 여전한 희망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의 다음 장편을 또 기다려 봅니다 (또 10년을 넘게 기다려야 하나... 그래도 희망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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