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클레어 키건의 두 권의 소설을 들고 왔습니다!
맡겨진 소녀 (foster)
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
이동진 평론가가 '맡겨진 소녀'를 2023년 올해의 소설 중의 하나로 꼽는 바람에 서점에서는 일약 베스트 셀러가 되고, 도서관에서는 예약이 4~5명이 밀릴 정도로 빌리기 어려운 책이 되어 버렸습니다. 바로 전에 게시글을 올려 드렸다시피, 이제는 책을 사지 않겠다, 마음 먹어 너무 보고 싶은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와중에 권님께서 원서와 번역본 둘 다 빌려 주셔서 이번 연휴에 한달음에 읽게 되었네요(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몇 주 전에 우연히 지인에게 선물을 받았는데, 당시만 해도 클레어 키건의 소설인지 몰랐습니다, 정말 이런 우연이..).
두 권을 연달아 읽었지만 맡겨진 소녀가 98페이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121페이지로 두 권을 합쳐도 웬만한 장편소설 1권도 되지 않은 분량이라 빠르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맡겨진 소녀, 를 먼저 읽었는데,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읽는 내내 지루했습니다. 클레어 키건은 데뷔부터 지금까지 24년 동안 단 4편의 소설밖에 내지 않았는데도, 굵직한 세계문학상 후보로 많이 올라 아이랜드의 대표작가로 명성을 얻었는데요. 소설의 권수가 적은 만큼, 각각의 분량이 적은 만큼이나 쓸데 없이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키건을 이렇게 말했을 정도니까요.
# "간결한 단어로 간결한 문장을 쓰고, 이를 조합해 간결한 장면을 만들어나간다" - 무라카미 하루키
이런 말들 때문에 머릿속에는 헤밍웨이나, 김훈을 떠올리며 책을 접했는데, 늘어지는 문체는 아니었지만 그다지 간결하게 쓰고 있는 기분을 느끼기도 힘들었습니다.
# "십여 년 만에 마침내 나온 클레어 키건의 신작이 고작 100여 쪽에 불과한 데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심하길. 키건은 단어 하나 낭비하지 않는 작가니까" - 영국의 문화평론가 베리 피어스
이런 평을 먼저 접하고 책을 읽은 탓일까. 내 눈에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아무튼 맡겨진 소녀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다소 지루하고, 잠시간은 하품이 내며 읽어 나갔다. 물론 키건은 마지막 '한 문장'만으로 지루한 서사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뒤집어 버리는 마법을 사용하지만.
** 여기서부터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일부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소설인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 키건의 문장은 지루했다. 별다를 거 없는 일상들이 펼쳐진다. 1946년에 태어난 펄롱의 이야기인데, 정말 별다를 게 없다. 영화에서도, 드라마이서도, 기존 문학에서도 숱하게 봤을 법한 서민 빌 펄롱의 삶(펄롱은 석탄ㆍ목재상을 하고 있다). 그의 삶은 고되다. 그나마 입에 풀칠은 하고 살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 부지런하지 못하고 술이라도 입에 댔다가는 - 굶어죽는 삶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의 엄마는 미혼모이다. 그의 엄마를 거둬둔 사람은 과부 윌슨 부인이다. 윌슨 부인은 나름의 큰 농장이 있었고, 농장 일꾼인 네드도 같이 살고 있었다. 윌슨 부인의 도움으로 펄롱은 아일린이라는 여자와 결혼하고 딸 다섯과 시내에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초반을 읽으면서 키건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궁금했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을 이고 사는 삶은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그런데 중반부에 접어들자, 이야기는 반전되기 시작한다. 펄롱이 석탄을 주문한 수녀원에 배달을 갔다가 우연히 작은 경당에서 젊은 여자와 어린 여자아이들이 바닥에 엎드려 광을 내기 위해 바닥을 죽어라고 문지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한 여자가 펄롱에게 다가와 강에 데려다 달리고 한다. 아저씨 집에 데려갇거나 아니면 그냥 물에 빠져 죽고 싶다고. 그때 수녀가 나타나고 배달일을 마치고 펄롱은 집에 돌아오지만 낮에 봤던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아내 아일린에게 그 일을 얘기하자 아내는 발끈하며 말한다.
# 어쨌든 간에,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우리 딸들은 건강하게 잘 크고 있잖아?" (중략)
"이런 생각 해 봤자 무슨 소용이야?" 아일린이 말했다.
"생각할수록 울적해지기만 한다고." 아일린은 초조한 듯 잠옷의 자개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중략)
"하지만 만약 우리 애가 그중 하나라면?" 펄롱이 말했다.
"내말이 바로 그거야." 아일린이 다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걔들은 우리 얘들이 아니라고." - 이처럼 사소한 것들 p.55~57
내일 모레가 크리스마스 이브다. 펄롱은 석탄광 문을 열다가 한 여자 아이를 발견한다. 머리는 엉망으로 깎여 있고 맨발인 여자아이다. 배로강에 데려달라고 했던 그 아이는 아니었다. 펄롱은 아이를 차에 태우고 수녀원에 대려다 준다. 수녀원장은 펄롱에게 차를 대접하고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돈이 담긴 봉투를 건넨다(봉투에 안 카드에는 "아일린, 빌, 딸들에게. 여러분 가족에게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기를."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수녀원을 떠나기 전에 펄롱은 아까 자신이 데려온 아이를 찾아간다. 아이는 옷을 갈아입고 부엌 테이블 앞에 앉아 있다.
# "이름이 뭔지 알려줄래?"
아이는 다시 수녀를 흘긋 보았다. "여기에서는 엔다라고 불러요."
"엔다? 그건 남자 이름 아니니?"
아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원래 이름이 뭐야?" 펄롱이 말투를 누그려 물엇다.
"세라. 세라 레드멘드요." - 이처럼 사소한 것들 p.82
그때 이후로 펄롱은 좀처럼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 계속해서 바닥을 있는 힘껏 문지르는 젊은 여자들과 여자아이들의 모습, 머리가 제멋대로 깎여 있던 세라의 모습, 아이의 시꺼먼 맨발이 머릿속을 뒤흔든다.
과연 펄롱은 선택은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아일랜드의 크리스마스 캐롤을 읽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또 같은 작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맡겨진 소녀'와 달리 격정적이었습니다. 클레어 키건이 각광을 맞는 이유는 일견 '개인적인 서사'로 보이는 것들을 통해 '거대 서사'를 이끌어 내는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맡겨진 소녀에서는 어린 여자 아이의 시선,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게는 일개 서민 펄롱의 시선 같은 '개인적인 서사'를 통해 '거대한 서사', 그러니까 맡겨진 소녀, 이처럼 사소한 것들 모두 당시 아일랜드 사횡의 궁핍한 경제상황, 그로 인해 파편화된 가정사,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는 더 나아가 미혼모 및 아동에 대한 - 정부와 교회 주도로 정당화된 - 노동 착취에 대한 서사 속으로 독자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간다는 말입니다.
두 개의 소설을 연달아 읽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맡겨진 소녀의 여자아이가 저에게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세라라는 여자아이와 동일인물로 보였습니다.
인간이 기본적 욕구(식욕, 성욕)에서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다는 상위 욕구로 나아가는 것은 꼭 피를 나눈 가족관계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혈연관계가 없는 관계에서도 양육(fostered by our society)될 수 있다는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아직 번역되지 않은 클레어 키건의 다른 소설들도 조금은 욕심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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