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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 등단작 - 채식주의자 - 작별하지 않는다 까지

by 북노마드 2024.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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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의 예상도 없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맞습니다

노벨 문학상

 

사실 노벨 문학상이라는 것은 우리와는 정말 먼 이야기인 것만 같았으니까요. 그렇게 배워왔으니까요. 소위 문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서구의 전유물이다시피 한 것이었기에)이었으니까요.

 

Live로 노벨 문학상을 기다리는 민음사 TV 속 세 명의 패널들도 심지어 시청자들보다 늦게 '한강'이라는 이름을 알아차릴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번역이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2016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했을 때도 나왔던 말이지만 그래도 노벨 문학상이라니...

문득문득 기사를 통해서 10월 10일 우리나라 시간으로 저녁 8시에 노벨 문학상을 발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저였지만 그다지 노벨 문학상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작품에 상을 부여하는 거라서 어쩌면 범접할 수 없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상하게 스물스물 몇 일 전부터 제 스마트폰 알람에 노벨문학상 관련 기사들이 많이 뜨더군요. 요맘 때였나 보다,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 우리 시간으로 저녁 8시인지도 모르고 - 발표가 되었나 올해는 하루키인가, 아니면 언론에서 자주 언급됐든 중국의 그 작가인가 싶어서 뉴스를 검색을 했는데 그때가 저녁 7시 58분이었습니다. 아직 결과가 없길래 황급히 찾아보니 우리 시간으로 저녁 8시에 발표가 된다고 하더군요. 2분만 기다리면 결과를 알게 되니까 별 생각없이 기다렸습니다. 만년 후보자라서 별다른 기대는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하루키이기도 해서 설마 이번에는, 이라는 생각으로 새로고침을 계속 했었습니다. 그런데 8시 2분인가, 3분에 '속보'로 뜬 뉴스기사를 보고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요새는 하도 허위기사가 많아서 허위기사인가, 내가 잘못 본 것인가, 싶어서 몇 번을 새로고침을 했습니다. 오른쪽 상단에는 세계일보, 심지어 조선일보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맞다는 얘기인데, 설마 이런 걸 가지고 사기를 칠까, 싶었던 순간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진짜? 이게 진짜라고? 한국에서... 내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 그러니까 여기 한국 맞지? 정말 한국에서 노벨 문학상이 나왔다고? 그것도 한강? 나하고 몇 살 차이 나지도 않는 한강 작가님이? 정말? 내가 한때마나 빠져 들었던 그 한강이? 설마? 설마? 설마?

 

요사이 한국의 문화적 위상이 K-Pop을 시작으로 해서 드라마 영화에까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넘어오고 있는 패권의 변화(미국에서 아시아권으로의)의 국제정치적인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고는 보지만서도, 이 모든 것을 고려한다고 치더라고 한강 작가의 문학적 성취는 그 자체로만 판단해서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자기 전 확인했던 도서관에 대출 가능했던 한강 작가의 작품들이 오늘 오전에 모조리 소진되어버렸으니까 말입니다.

 

어찌됐든 한때마나 그녀의 독자로서, 그녀의 멋진 성취를 진심으로 축하드리며(이 땅의 외로운 영혼들에게 잊고 지낸 문학에 대한 열정을 지펴 줬다고 믿습니다), 그녀의 작품 리뷰 특집을 준비해 봣습니다.

 

다시 한번 당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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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다 읽었다. 한강과의 조우는 그녀의 강연을 통해서다. 비록 맨부커상을 탔지만 일반 사람들에게 불호의 의견들이 많았던 <채식주의자>어 선뜻 손이 가지 않았지만 영상 속의 그녀는 영혼까지 선해 보였다. 그럼에도 채식주의자는 손에 들기 부담스러워 그녀의 단편들로 먼저 그녀를 만났다. 그녀의 소설에는 - 공식처럼 - 폭력과 죽음이 드리워져 있었다(어린 시절, 실제의 학대를 의심할 정도로). 단편에서 몇 편의 장편들로 넘어 오고는 이제는 한강과 작별(?)해야 할 시간이라 느꼈다. 딱 그때가 <작별하지 않는다>의 초반에 들어선 때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작년 하반기에 또 한차례 우리 문학계에 낭보가 들린다. 이번에는 한강이 작별하지 않는다로 메디치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별 수 있는가. 작별을 고했지만 다시 만나보는 걸로.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도의 4.3 학살을 그리고 있다. 해방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좌익화를 우려한 정부가 제주도민을 싸잡아 도륙을 한 사건이다. 한강의 다른 작품인 소년이 온다에서 5월의 광주의 학살을 그려냈다면 이번에는 제주로 무대를 옮겼다. 실은 그게 애초에 내가 작별하지 않는다의 초반에서 한강에게 작별을 고했던 이유다. 또 죽음, 이란 말인가. 당시에는 더 이상 죽음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펼쳐든 책에서는 중반을 접어들기까지 전혀 학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책을 덮고 인터넷 검색을 해 봤을 정도로(정말 이 책이 맞나).

 

책은 여주인공 경하의 꿈으로 시작한다. 발 아래로 물이 차오르고 뼈들이 보이고.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인선에게 연락이 온다. 목공예를 즐기던 인선이 급기야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가 생겼고, 골든 타임을 지켜 겨우 손가락의 신경을 이을 수 있게 되었다. 인선을 병문안 온 경하는 인선으로부터 뜻밖의 부탁을 받는다. 자신의 집에 가 달라고. 가서 남겨진 두 마리의 앵무새들에게 물을 주라고. 반드시 오늘 안에 가야 죽지 않는다고. 인선의 집은 제주도에서 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들어가야 하는 외지에 자리잡고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경하가 가는 날, 몇 년만의 폭설이 제주를 삼킨다. 버스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인선의 집. 그 집에 가는 길에 발이 미끄러져 순간 정신을 잃기까지 한다. 무에 한다고 이다지도 집에 가는 여정을 길고도 상세하게도 그릴까 싶었다.

 

나중에 경하는 인선에게서 어머니의 오빠가 학살을 당했다라는 것을 듣게 된다. 아니 정확히는 오빠가 끌려갔고, 교도소를 전전하면서 아무래도 결국에는 총살을 당하지 않았을까, 짐작하게 되었다는 인선 어머니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학살의 과정에서 유일하게 빠져나와 홀로 민가의 어느 집을 찾았다는 어떤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그가 어머니의 오빠가 아니었을까, 짐작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니까 폭설 속에서 경하가 인선의 집을 찾아가는 과정은 흡사 그 남자의 행로를 떠올리게 한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인선은 어쩌자고 겨우 앵무새를 살리겠다고 이런 혹한에 나를 내몰았을까, 그러니까 이유도 알 수 없이 왜 나는 쫓기고 학살당해야만 하는가.

사실 작년 하반기부터 앓아온 난독증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기도 했거니와 한강 특유의 시적인 문체 탓에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다(남자가 인선 어머니의 오빠인지, 남동생인지, 삼촌인지조차 헛갈릴 정도니까). 하지만 느낌만으로도 책이 읽혔다. 한강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텍스트를 앞뒤로 옮겨가며 낱낱이 해부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책을 읽으면서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뻗어 나오는 하얀 손, 가느다랗고 길다란 손가락.

 

그 손과 손가락이 자주 아우성친다. 우리가 왜 죽어야만 했냐고.

 

정치적인 상황과 당시의 정황을 두루 살핀다면 어떤 관점에서는 당시의 폭력은 정당화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강은 - 그녀가 늘 그래왔듯이 - 폭력 그 자체에 대해 항변한다. 낱낱의 인간에게 있어 삶은 단 한 번일 뿐이니까. 단 한 명이라도 그 시절을 기억하는 한 그들은 영원히 삶과 작별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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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강 작가 인터뷰 영상

 

오늘은 한강 작가의 영상을 하나 가져와 봤습니다.

 

한강 작가에게 독자들이 보내는 질문 | 프리미엄 강연 '당신들에게 보내는 나의 편지'

 

이라는 영상입니다^^ 맨 아래 링크해 드립니다.

소설의 색채가 진해 나름 호불호가 많은 작가 중의 하나일텐데 그녀가 독자들과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 한 켠이 아련해지고 위로 받는 기분마저 드네요.

 

최근에 부쩍 저와 자주 마주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 눈길이 갑니다. 그 이유를 글(*아래 참조)로 적어봤는데 어쩐지 한강 작가의 질의 응답을 들으니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만 같네요^^

 

 

*

최근에 부쩍 자주 마주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말끔하고 - 외관적으로 - 아무런 하자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버스에서 의자에 머리만 대면 바로 곯아떨어집니다. 머리를 창가에 부딪힐 듯 기대거나 반대로 옆 사람에게 당장이라도 기댈 정도로 몸을 기울이면서요. 당장이라도 요를 깔아주면 땅 속으로 녹아 내릴 것만 같습니다.

 

그 사람과 마주치는 공간들은 외롭습니다. 혼자 밥을 먹습니다. 혼자 운동을 갑니다. 혼자 스마트폰을 들여다 봅니다.

 

가끔, 그가 웃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문득 깜짝 놀랍니다. 여느 사람들과 똑같이 밝게 웃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요.

 

혼자 밥을 먹은 그는, 혼자 걸어서, 혼자 자기 방으로 돌아갑니다.

 

술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는 방 안에서 무엇을 할까요?

 

그 사람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릿합니다.

 

 

*

한강 작가가 독자들과 질의응답 중 일부를 적어 봅니다.

 

# 제가 강해지기 위해서 그런 책들을 쓴 것은 아니구요 ... 하나도 강해지지 않아요... 오히려 저는 인간에 대해서 쓰고자 하는데, 인간이 뭔지 알고 싶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간의 지점들이 있잖아요.. 제가 대학 다닐 때 좋아했던 말이 있는데... 유진 오닐이 한 말인데 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대화가 아니라, 인간과 신의 대화여야 한다고... - 4분 40초 즈음

 

# 의미라는 건 우리에게 중요하잖아요. 우리가 마치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의미를 위해서 살고 있기도 하고.. 사실 그런 의미라는 게 원래 없는 거야, 라고 느껴지는 때가 많지만, 그렇지만 또 우리가 그걸 포기하지 못하잖아요. 어쩌면 우리에게는 행복해지고자 하는 욕망보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욕망이 더 강한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 6분 10초 즈음

 

# 제가 아주 밝거든요. 제가 아주 웃음도 많고 밝은 사람인데... - 11분 40초 즈음

 

 

# 혼자 애길 알아야 되고 좀 진지한 얘기를 하다보니까 .. 마치 자신을 갉아 먹으면서... 뭔가 어둠에 탐닉하는 그런 사람으로 보이신 것 같은데.. 제가 또 그렇지는 않습니다.. 인생을 사랑하고 있어요..

 

근데 가끔 제가 쓰는 소설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구요.. 그렇지만 그 안에서 또 어떤 힘을 느낄 때도 있어요. 20대나 30대 돌아보면 저 자신이 굉장히 약하게 느껴지거든요. 그때 저 자신이... 별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지금 조금 나은 인간이 된것 같아요. 아주 조금..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결국은 제가 썼던 몇 권의 책과 ... 그건 써 가는 과정이 아주 조금 저를 강하게 만들어줬던 것 같고... - 11분 50초 ~ 13분 즈음

 

 

*

한강 작가의 소설이 다소 난해할 때도 있지만 그녀가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묘하게 다시 그녀를 찾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듯싶습니다(실은 이 영상을 보면 글에 앞서 한강이라는 인간 자체에 쏙- 빠져들고 말테지만요^^).

 

영상에서 그녀가 말하듯이 그녀는 글을 통해 끊임없이 의미를 찾으며 인간과 신과의 대화를 기록하려고 애쓰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ps1.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아닌 그의 '신'과 대화를 해야 할 듯싶네요^^

 

 

ps2. 아무리 글을 써도 더 강해지지 않은 그녀지만, 글로 인해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고 하네요. 저 또한 아무리 강해지려고 해도 여전히 나약하기만 한 자신을 볼 때가 있는데 위로를 받네요. 조금도 강해지지 않았다니... 그러니까요.. 굳이 강해질 필요가 있을까요? 여전히 연약하고 깨어지기 쉬운 인간이겠지만 전보다 조금 더 나은 존재가 되면 되지 않을까요?

 

그녀가 글을 통해 그랬던 것처럼 저에게도 책과 글이 저를 조금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 주기를 기도해 봅니다☺️

 

 

ps3. 그녀의 강연을 조용히 듣고 있자면 가슴이 저릿저릿, 눈시울이 찔끔찔끔, 거립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인간과 동시대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감사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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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채식주의자

오래된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잔인하다고, 거부감이 든다는 귀동냥만으로 계속 피하기만 했던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방금 끝냈다.

 

오래 돌아왔다. 한강 작가의 등단작인 <붉은 닻>을 시작으로 몇 편의 단편 연작, <희랍어 시간>, <흰> 과 같은 장편 소설을 거쳐 드디어 종착역에 도착한 기분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꽤 오래 피하다 보니 더 이상 피하지 말자, 라는 도발의식이 일었다.

 

우려와는 달리 이렇게 몰입해서 책을 읽었던 게 언제였던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설 속에 정신 없이 빨려 들었다.

책을 덮고 나서, 과연 나는 이 책에 대해 타인에게 말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먼저 일었다.

 

책은 금기시되는 것들이 가득하다.

 

고기, 육체, 욕정, 폭력, 선혈, 불륜, 분열, 죽음...

 

떠오르는 단어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듯싶다.

 

한강 작가의 단편 연작들을 읽으면서 그녀가 줄기차게 다뤘던

 

폭력, 죽음(주로 자살), 중독(주로 알콜중독), 강박, 트라우마...

 

등이 이 소설에서도 역시나 중복적으로 차용된다.

 

무엇보다 내 자신을 소설에 고정시켰던 가장 큰 이유는 - 부끄럽지만 - 소설에 가득한 육욕(肉慾) 때문이었다.

* 육욕 (고기로 통칭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욕구)

 

잔인하지만, 야릇하기도 했기에 - 때론 공공장소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정도로 - 몰입했던 이유도 있을게다(*새삼 육욕이 정신을 지배하는 '힘'에 대해 생각해 봤다).

 

(감히)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빨간 책을 읽은 기분이다. 학창시절에 교실에서 몰래 보다가 선생님에게 뺐기는 그런 빨간 책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것보다는 하얀 도화지에 시뻘건 선혈이 낭자한 책을 읽은 기분이다. 피를 쫓는 흡혈귀처럼 군침을 흘리며 책을 읽었다고 할까.

 

한강 작가의 머릿속에는 과연 뭐가 들어 있는 것일까, 그녀의 어린 시절은 도대체 무엇으로 채색이 된 것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낭자한 피맛을 맛보고 싶은 자라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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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강의 등단작, 붉은 닻

 

한강.

2016년 미디어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그녀.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그녀.

 

당시는 소설을 전혀 읽지 않았던 때라, 스쳐 지나가는 기ㅅ사였다. 2021년부터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대문호들에 밀려 홀대 받던 그녀였다.

 

세계 고전을 줄곧 읽어와 번역체에 진저리가 난 탓일까. 아직도 읽어야 할 고전들이 잔뜩 있음에도 어떤 책도 손에 잡히지 않는 몇 달이었다. 그러다 그녀의 책을 읽고 싶어졌다. 이유는?

 

예감이랄까.

손에 든 한강의 작품은 '붉은 닻'이었다. 제목 옆에는 서울신문 등단작이라는 부연이 있었다. 폰 화면 위 아래로 그녀의 단편소설를 넘기다 손이 간 작품이 그녀를 지금 우리 앞에 있게 만들어 준 데뷔작이었다.

 

‘붉은 닻’은 직장인 동식이 남동생 동영의 제대 소식을 듣고 까닭 없이 아픈 장면으로 시작한다. 동영이 망나니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형제간에 넘지 못한 선을 넘었던 것일까.

 

한때 꽤 번화하던 학원가였지만 학원이 망하면서 철문만이 늘어선 거리. 그 거리 끝에서 여전히 조그마한 문방구를 하는 동식의 어머니는 소풍을 가자고 들떠한다.

 

동식은 대학을 막 졸업하고는 폭음과 오입질로 간경변이 진행되어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동영은 지난 3년간 군에서 휴가를 나와도 집은 한 번도 찾지 않고 몸은 괜찮아, 라는 안부 전화만을 드문드문 남겼다.

 

돌아온 동영은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춘다. 밤 늦게서야 귀신처럼 돌아와 얼어붙은 몸뚱이 그대로 바닥에 몸을 던진다. 어머니와 동식은 동영의 옷가지를 벗기고 이불을 깔아 동영을 옮긴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어릴 적부터 동영은 소리 없이 사라졌고 언제나 밤 늦게 유령처럼 돌아왔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살 거야, 이럴 거면 우리 가족 인생에서 꺼져 버리라고, 소리치고 싶은 걸, 동식은 자정이 다 될 때까지 문방구 문을 열어두고 모로 누워 선잠에 빠진 백발의 어머니를 보고 참는다.

 

술에 취해 밤 늦게 돌아와 동식의 볼을 꼬집고 엉덩이를 때리고 불알을 만지던 아버지는, 어느 날 계곡물에 빠져 시체로 발견된다.

 

동식, 동영, 그리고 어머니는 소풍을 간다. 파도 하나 치지 않는 갯벌가. 파도 소리 하나 없고, 하얗게 부서지는 거품 역시 없다. 그곳에는 버려진 수많은 목선들이 있고, 그 아래 검붉게 녹이 쓴 닻이 있다. 동영은 휴가 때마다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동영과 어머니가 개흙을 매만지고 있던 사이 동영이 또 사라졌다. 동식은 다시 두려움에 휩싸인다. 동생을 찾아헤매던 동식은 조금 전 닻들이 모여 있는 곳에 서 있는 동영을 발견한다. 어둠 속에서 동영이 물었다.

 

"형은 왜 아팠어?"

"왜 술을 마셨어?"

 

동식은 입술을 달싹거렸고 동영은 구두를 벗고 바다를 향해 걸어간다.

 

*

둔탁한 게 가슴을 쳤다.

 

이야기 구조가 머릿속에 잡히지 않지만 먹먹하다. 흐릿한 인상을 꿰어보면 아버지가 늘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둘렸고, 그게 싫어 동영은 가출을 일삼았고, 어쩌면 동식은 아버지의 환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다 본인 또한 술에 취해 동영을 어떻게 한 것이 아닐까.

 

오랜만에 동생 집을 찾았다. 명절 때만 잠깐 만날 뿐이지 이제는 각자 산 지가 10년이 넘었다. 봄이라 냉방을 하지 않는다는 동생. 그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난 다음날 오한이 들었다. 그때야 알았다. 동생이 냉체질이라는 사실을. 한 지붕 아래에서 가족의 평균 온도에 맞춰 살다 이제 각자 색을 내는 독립적인 개체가 되었다.

 

어릴 적 동생과 다투다가 ‘죽여 버릴 거야’라며 식칼을 들던 동생을 피해 달아났던 기억이 있다. 옥상에 올라 기세 좋게 나를 찾던 동생의 울그락불그락거리던 얼굴이 떠올랐다.

 

어머니, 형제, 그리고 어린 시절의 기억 탓인지 서사의 아귀가 맞지 않아도 유독 와 닿았다.

 

한강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우연히 찾은 강연에서 느릿느릿 말을 잇는 목소리를 듣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숏폼이 유행하고, 짧은 시간 안에 핵심만 전해야 인정받는 세상에서 그는 각별했다.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거참, 빨리 좀 내리시지, 빨리 좀 갑시다, 라고 입밖으로만 꺼내지 않았지, 각박해져 있던 내가 보인다.

 

오랜만에 사람답게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저녁이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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