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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최고의 책 1위 : "나의 눈부신 친구" (ft. 나폴리 4부작)

by 북노마드 2025.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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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이유는 단순하다.
 
# 뉴욕타임즈 선정, 21세기 최고의 책 100에서 1위
 

 
2024년 7월에 뉴욕타임즈는 500여명의 작가, 평론가, 시인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고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소설이 바로 이 소설이다.
 
나의 눈부신 친구

이 책은 이탈리아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이며 흔히 나폴리 4부작이라 불리는 작품의 1부에 해당하며, 소설의 두 여주인공인 릴라와 레누의 유년기와 중, 고등학교 시절을 다루고 있다.
 

 
참고로 21세기는 2001년 1월 1일부터 2100년 12월 31일까지이니, 약 4분의 1이 지난 시점에서 중간 점검을 해 본 느낌이다.
 
소설은 릴라의 - 낭비와 방탕이 몸에 배어 있는 - 개차반 아들 리노가 이제는 60의 나이가 된 레누에게 전화를 걸면서 시작한다.
 
엄마가 사라졌어요.
 
리노가 전화를 건 이유는 릴라와 레누는 1950년대 나폴리 인근의 어느 작은, 그것도 아주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동고동락하며 자라는 소꿉친구 사이였기 때문이다. 혹시 아주머니를 찾아간 것이 아니냐고.
 
레누는 엄마를 찾지 말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레누는 언젠가 릴라가 사라질 줄 알았다고 생각하며 유년시절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 릴라가 바라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릴라는 말 그대로 증발하기를 원했다. 그녀를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가 뿔뿔히 흩어져서 그녀에 대한 그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나는 릴라를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잘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녀가 이 세상에 머리카락 한 오라기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 나의 눈부신 친구 中에서
 
작품은 레누의 시선('나'라는 화자가 레누임)으로 쓰여져 있다.
 

 
릴라는 외모는 뛰어나지 않지만 - 어릴 적은 삐적 마른데다 얼굴은 주근깨로 가득차 있다 - 독특한 매력을 타고 나 그녀가 지나가면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게다가 굳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더라도 책도 술술 읽고, 글도 잘 쓰며, 라틴어도 쉬이 암기해 낸다. 그런 릴라에게 자석처럼 이끌린 레누는 언제나 릴라를 부러워한다.
 

 
1950년대 그것도 가난에 찌든 시골 마을에서 - 아무리 유럽이라고는 하지만 - 여자아이를 중학교에 보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토록 원하던 중하교 진학에 실패한 릴라는 오빠와 아버지의 구둣방에서 구두를 제작하고 수선하는 일을 시작한다. 반대로 레누는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끝내 중학교에 입학하고 - 배우지 않아도 자신보다 훨씬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하는 - 릴라에 대한 열등감으로 더욱 학업에 열중하고 나중에는 그녀 자신의 글로 선생님들에게 인정받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렇지만 그 순간까지도 레누는 릴라와 달라붙어 다니며 릴라가 말하는 법, 사고방식을 스펀지처럼 흡수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일등을 하면서 실력을 인정받는 레누는 학업으로 승승장구하여 고등학교까지 진학을 하게 된다.
 
릴라와 레누는 어릴 적부터 큰 부자가 되고 싶은 꿈에 빠져 있다. 작은 아씨들을 같이 읽고는 언젠가는 작은 아씨들과 같은 글을 써서 커다른 부를 이루고 싶은 꿈을 같이 꾸기도 한다.
 
그 와중에 열여섯이 된 릴라는 야위었고 주근깨가 많았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길을 나섰다고 하면 동네 남자들의 모든 시선을 끌 정도로 성숙한 여인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동네의 모든 남자 또래들이 릴라에게 빠져 들고 동네에서 가장 잘 나가던 돈 아킬레가 살해한 것으로 의심이 되는 솔라라 집안의 아들 마르첼로가 릴라의 부모님에게 TV를 사주기도 하며 환심을 사 약혼까지 하게 되지만 정작 릴라는 동네에서 식료품점을 해서 큰 돈을 번 카라치 집안의 아들 스테파노에게 관심이 간다(솔라라 집안(마르첼로)이 살해한 것으로 의심되는 돈 아킬레가 스테파노의 아버지이다). 스테파노는 큰 재력으로 릴라 아버지의 구두가게에 간판을 달아주고 새로운 구두를 만들면 판로를 개척해 주겠다고 약속하며 릴라에게 온갖 물량공세(그녀가 원하는 화려한 옷, 가방 등을 모조리 사준다 - 옷이 릴라를 돋보이게 하고, 릴라가 옷을 돋보이게 해 준다며 친구 레누는 질투와 동경의 시선을 동시에 보인다)로 릴라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릴라에게 차인 마르첼로는 다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을 하지만, 릴라는 그럴 거면 나를 제일 먼저 죽여야 할 거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안 그러면 내가 너희 집안 사람들을 다 죽여버리겠다고. 실제로 어릴 적부터 그 정도 강단을 보여준 릴라였으니 마르첼로는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 안고 돌아선다.
 

 
온갖 남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릴라의 모습에 경도되어 레누는 - 릴라를 이기기 위해 - 더욱 더 공부에 몰두한다. 우습게도 릴라의 결혼날짜가 잡히고 나서(앞으로 90일) 레누는 조바심이 난 나머지 딱 그 순간 고백한 안토니오라는 또래의 남자아이(실제로 레누는 니노라는 아이를 짝사랑하고 있었다)와 사귀기 시작한다. 적당한 때에 헤어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였고 일단은 릴라와 동등하게 연인이 있고 싶어했다.
 
결혼을 앞두고 외모의 치장에만 신경을 쓰는 릴라를 보고 레누는 어쩐지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어릴 적 작은 아씨들 같은 소설을 써서 엄청난 부를 이뤄보겠다고 다짐을 했던 어린 그들은 거기에 없었다. 릴라는 이제 스테파노 집안의 돈으로 이미 이 동네 사람들과는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 본인 혼자만 패션 잡지 속에 등장하는 - 사람인 것마냥 살고 있었다.
 
그 사이 공부에만 몰두한 레누는 이전보다 더 살이 찌고 여드름도 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시력까지 안 좋아지게 된다. 가난에 찌든 집이었기에 부모에게서 싫은 소리를 들어가며 어렵게 안경을 맞추게 되지만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안경다리가 부러지고 한쪽 안경알이 깨진다. 집에 어떻게 얘기해야할지 안절부절 못하는 레누에게 릴라는 안경을 달라고 말한다. 얼마 뒤 릴라는 레누를 불러냅니다. 릴라는 완벽하게 고쳐준 안경을 쓰고 있다. 안경을 쓰고 거울 앞에 선 레누는 못 생겨진 자신을 모습에 안경을 쓰기 싫어했는데 릴라는 마치 자기 안경인 것처럼 멋진 모습이었다.
 
드디어 릴라의 결혼식 날. 레누는 짝사랑하는 - 이 마을에 속하지 않는 듯한 늘씬한 키와 준수한 외모의 - 니노를 보게 된다. 우연히 니노의 옆에 앉게 되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의 입에서 나오는 지식들에 감탄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말들이 아니라 본인이 논리정연하게 세워둔 사상들을 아무런 감정의 혼합 없이 말한다. 레누는 이 남자라면 저기 앞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휘감고 보란 듯이 이 가난한 마을에서 벗어나고 있는 릴라처럼 자신을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데려갈 수 있다고 기대하며 니노가 조금이라도 이성적인 시선을 보내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니노는 레누에게는 아무런 이성적 호기심이 없는 듯 보인다.
 
소설 말미에 한 무리의 하객이 등장함에 따라 결혼식장은 그야말로 정지된 듯싶어 보인다. 그 무리는 이른바 원수지간이라고 할 법한 솔라라 집안의 형제들이었다. 릴라가 보기 좋게 차 버린 마르첼로가 테이블에 앉아 다리를 꼰다. 그 순간 릴라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진다. 그가 신고 있는 구두는 바로 자신의 아버지와 오빠의 구두방 로고가 새겨져 있었으며 자신이 어렸을 때 - 이 구두로 큰 부를 이뤄야겠다고 다짐하며 - 스케치해서 수없이 망가뜨려가며 완성시킨 바로 그 구두였다.
 
#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그제야 드러났다. 나는 릴라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며 어렸을 때처럼 창백해지는 것을 보았다. (중략) 그녀의 시선은 더 먼 곳에 있는 마르첼로의 구두를 향해 있었다.
마르첼로는 첼루로 부자가 만든 남성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것도 진열장에 전시된 금색 버클이 달린 모델이 아니었다. 마르첼로가 신고 있는 구두는 예전에 릴라의 남편 스테파노가 구입한 바로 그 신발이었다. 릴라가 수개월 동안 두 손을 망가뜨려가며 만들었다 분해하고, 다시 만들기를 수없이 반복해서 완성시킨 바로 그 신발이었다. - 나의 눈부신 친구 中에서


0. 나오면서
 
사실 소설을 진득하게 읽지는 못했다. 이유는 책의 절반 이상을 운전을 하면서 오디오북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소설 내용의 20%는 잠시 후 좌회전, 우회전, XX IC 등이 오디오가 뒤섞여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다 읽고도 21세기 최고의 소설의 타이틀에 걸맞는(?) 감동 같은 것은 다소 적었던 듯싶다.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21세기 최고의 소설의 맛(?)을 봤다는 뿌듯함은 있다.
 
책을 덮고 나서 이 책의 어떤 부분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을 하는 것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해 보자면 이 소설의 유년시절의 누구나 가져봤을 법한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굳이 요약하자면,
 
우정과 질투 사이랄까.
 

 
아마도 어릴 적 누구에게나 친하면서도 은근한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던 친구 한두 명 정도는 있었을 것 같다. 아니면 그렇게 친하지는 않지만 반에서 유달리 인기가 많은 친구들에 대해 그 친구와 친해지고 싶으면서도 어쩐지 시기 질투가 나는 기억들 말이다.
 
나에게도 그런 친구들이 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떠올릴 수 있었다.
 
드래곤볼의 모든 캐릭터를 안 보고도 쉬는 시간에 즉석에서 그려줘서 인기가 많았던 친구. 그 친구의 집에 가서 벽에 걸려 있는 고양이 유화를 보고 느꼈던 묘한 질투감(선화에만 능한 줄 알았더니 채색도 이렇게 잘하다니). 그 친구를 따라잡기 위해 하교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책가방을 집어던지고 그림연습을 했던 시절들.
 
소풍을 가면 늘 앞에 나가서 엎드려 있는 네 명을 가볍게 뛰어 넘어 버리는 합기도 2단인 친구. 수학여행을 가면 앞에 나가서 노래와 춤을 뽐내는 친구들(무엇보다 공부 잘 하는 친구들이 그것까지 잘 하면 멋있으면서도 그렇게 부러웠다).
 
소설은 레누의 1인칭 시점에서 쓰여지다 보니 레누가 보잘것없는 여자아이로 느껴지는 부분들이 더러, 아니 많이 있기는 하지만 3자의 눈의 객관적으로 보자면 레누는 1950년대라는 시절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고등학교 진학까지 한 엘리트 여성이었다. 게다가 남성들을 다 제치고 성적은 언제나 상위권이었고, 그녀가 쓴 에세이는 모든 선생님들의 칭찬을 독차지한다. 외모도 릴라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꽤나 미인과에 속해 동년배들에게 인기가 있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비교대상은 늘 -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 잡을 수 없는 - 릴라였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절친 릴라는 레누를 불행하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반대로 관찰자 시점으로 쓰여진 릴라는 실제로 레누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내용들을 소설 속에서 드문드문 찾아볼 수 있지만 결정적 대사는 이게 아니었을까 싶다. 고등학교 생활이 끝나갈 무렵 대학진학을 포기하려는 레누에게 릴라가 하는 말이다.
 
#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너는 공부를 계속하도록 해.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 - 나의 눈부신 친구 中에서

 
자칫 아예 꺼내보지 못하고 영원히 잊혀져 버릴 뻔한 유년시절의 우정, 그리고 그 시절의 추억을 보석함으로 옮기게 해 준 멋진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두에게 최고의 소설은 될 수 없겠지만 21세기 최고의 소설 No.1이니 한번 시간을 내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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