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글을 써도 될까, 고민했습니다.
사실 감히 이 책에 대해 리뷰를 남겨도 될까, 아니 그전에, 이런 책을 읽었다고 말해도 되나, 라고 고민했습니다.
이 책은 감히 종이책으로 읽을 수 없었습니다. 책의 표지도 그렇지만 감히 이런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없었습니다. 전자책으로 읽으면서도 간혹 화면 중간을 손으로 터치했을 때 상단에 드러나는 책의 제목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일까 걱정했습니다.
어떤 책이길래요? 네, 바로
롤리타
입니다.
그만큼 뿌리 깊게 우리 사회에 박힌 - 아니, 어쩌면 그저 내 안에 박힌 - 고정관념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읽기 시작했냐고요? 작년 연말에 소개해 드렸던 유튜버 북클럽비바님(*러시아 문학 전공 번역가로 본명은 김희숙)이 꼽은 러시아 소설가 Top 8에 무려 3위에 랭크된 작가가 나보코프였고 그의 대표작이 "롤리타"였기 때문입니다(*참고로 1위는 톨스토이, 2위는 안톤 체호프, ... , 6위는 도스토예프스키).
퇴폐적인 영화로만 기억하고 있던 롤리타가 왜 도스토예프스키를 제치고 3위일까? 내 손으로 직접 이유를 밝혀내리라,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렇게 손에 쥔 롤리타는 역시 우려했던 대로 읽기가 어려웠습니다.
험버트라는 중년의 남성이 가진 어린 소녀에 대한 성욕에 대한 묘사는 혐오스러웠습니다.
책의 3분의 1이 넘어가자 결국 험버트는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롤리타와 첫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곁으로는 아빠와 딸의 행색을 갖추며 미국을 자동차로 횡단합니다. 그 후로 이야기는 대단히 지루합니다. 외려 그때부터는 혐오스러운 장면들도 그다지 등장하지 않습니다. 뭐랄까, 갑자기 공기가 빠져버린 풍선 같아졌다고나 할까요?
생각해 보건대, 욕망이 혐오스러울 때는, 드러나고 실현되었을 때보다는 - 그렇다고 험버트의 행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 자기 안에 끊임없이 간직하고 키워나갈 때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책의 4분의 3이 넘어갈 때, 롤리타가 험버트에게서 도망칩니다. 그리고 험버트가 롤리타를 추적하는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책의 전반부에서 험버트는 어떤 사건으로 기소가 되었고 배심원 앞에서 자신을 변론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형식으로 구성이 됩니다. 그래서인지, 과연 험버트가 롤리타를 찾아내서 무슨 짓을 해 버리는 - 이를테면, 살인이라든지 - 것일까? 아니면, 롤리타의 고발로 잡혀들었던 것일까, 라는 의문이 커지면서 흥미진진해집니다.
결정적 장면은 책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책을 덮고 나서 느낀 것은 이 책은 흔히 알려진 대로 단순한 소아 성애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 적어도 저에게는 - 보편적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물론 윤리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사실 롤리타의 입장에서 본다면 힘이 없는 소녀의 인생을 망가뜨렸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험버트라는 존재는 희대의 악당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험버트의 입장으로 본다면 사랑의 대상이 어린 소녀였을 뿐, 롤리타에 대한 사랑은 진실했고 열정적이었습니다. 책의 말미에 험버트가 지독하게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동정심이 생길 정도였으니까요.
조금 더 영역을 넓혀보자면, 나보코프는 러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성인이 되어 미국으로 망명하여(*아내가 유태인이라 당시 히틀러를 피해서) 교수 활동을 하면서 롤리타를 집필하게 됩니다. 작가에게 롤리타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국에서의 유년 시절에 대한 메타포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다 읽었던 소설이 새로운 문을 열고 제게 다가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책 말미에 덧붙여진 작가의 말을 통해 조금 더 롤리타, 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책을 완성하고 여러 출판사에서 출판 거절을 받았다고 합니다. 포르노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빌드업(*더욱 더 자극의 강도가 강해져야 하는)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문학성이 뛰어난 것도 아니라는 이유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몇몇의 출판사들은 반미 소설이라고 거부합니다.
* 참고로, 롤리타는 러시아 문학인지, 미국 문학인지 논란이 있습니다. 이유는 작가인 나보코프는 러시아 사람이고, 성인이 되어 미국으로 망명하여 교수 활동을 하면서 - 무려 - 영문으로 롤리타를 쓰게 됩니다. 그래서 국적으로 보자면 러시아 문학이고, 쓰인 텍스트로 보자면 미국 문학이 됩니다.
나보코프는 소설은 관념적이어서는 안 되고, 탐미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롤리타, 에 어떤 주제 의식을 담으려고 하지 않았고, 유희적으로 쓰려고 했다고 합니다. 음악을 들을 때는 그냥 즐기면서, 왜 소설은 주제의식을 찾으려고 노력하냐고 말하면서 단순히 언어를 즐겨 주기를 바랍니다. 그도 그럴 듯이 소설에는 수많은 언어유희들이 즐비합니다. 제대로 롤리타라는 언어를 탐닉하기 위해서는 영어로 된 원문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저와 같이 무의식적 혐오감이나 고정관념을 가진 분들에게, 감히 일독을 권해 드립니다.
# 주의: 반드시 끝까지 완독하셔야 합니다. 초반만 읽다 그만두면 혐오와 고정관념은 더 깊어질 테니까요!
롤리타의 첫 부분으로 리뷰를 끝내봅니다.
#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걷드린다. 롤.리.타. - 소설 롤리타 중에서
'문학 공부가 돈이 되는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강 소설: 메디치상 수상] 작별하지 않는다 리뷰 (0) | 2024.01.18 |
---|---|
2024년 주요언론사 신춘문예 일정 안내 : 글 써서 부자 되자!!! (1) | 2023.11.03 |
스티븐 킹의 걸작: 쇼생크 탈출 (0) | 2023.08.09 |
이문열 단편소설: 사과와 다섯 병정, 어휘 (0) | 2023.01.14 |
"두 도시 이야기(찰스 디킨스)" 제대로 번역한 출판사는? (0) | 2022.06.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