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공부가 돈이 되는 시간

[한강 소설: 메디치상 수상] 작별하지 않는다 리뷰

by 북노마드 2024. 1. 18.
728x90
반응형

작별하지 않는다

를 다 읽었다. 한강과의 조우는 그녀의 강연을 통해서다. 비록 맨부커상을 탔지만 일반 사람들에게 불호의 의견들이 많았던 <채식주의자>어 선뜻 손이 가지 않았지만 영상 속의 그녀는 영혼까지 선해 보였다. 그럼에도 채식주의자는 손에 들기 부담스러워 그녀의 단편들로 일단 그녀를 만났다. 그녀의 소설들에는 늘 폭력과 죽음이 드리워져 있었다(어린 시절, 실제의 학대를 의심할 정도로). 단편에서 몇 편의 장편들로 넘어 오고는 이제는 한강과 작별(?)해야 할 시간이라 느꼈다. 딱 그때가 <작별하지 않는다>의 초반에 들어선 때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작년 하반기에 또 한차례 우리 문학계에 낭보가 들린다. 이번에는 한강이 작별하지 않는다로 메디치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별 수 있는가. 작별을 고했지만 다시 만나보는 걸로.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도의 4.3 학살을 그리고 있다. 해방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좌익화를 우려한 정부가 제주도민을 싸잡아 도륙을 한 사건이다. 한강의 다른 작품인 소년이 온다에서 5월의 광주의 학살을 그려냈다면 이번에는 제주로 무대를 옮겼다. 실은 그게 애초에 내가 작별하지 않는다의 초반에서 한강에게 작별을 고했던 이유다. 또 죽음, 이란 말인가. 당시에는 더 이상 죽음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펼쳐든 책에서는 중반을 접어들기까지 전혀 학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책을 덮고 인터넷 검색을 해 봤을 정도로(정말 이 책이 맞나).

책은 여주인공 경하의 꿈으로 시작한다. 발 아래로 물이 차오르고 뼈들이 보이고.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인선에게 연락이 온다. 목공예를 즐기던 인선이 급기야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가 생겼고, 골든 타임을 지켜 겨우 손가락의 신경을 이을 수 있게 되었다. 인선을 병문안 온 경하는 인선으로부터 뜻밖의 부탁을 받는다. 자신의 집에 가 달라고. 가서 남겨진 두 마리의 앵무새들에게 물을 주라고. 반드시 오늘 안에 가야 죽지 않는다고. 인선의 집은 제주도에서 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들어가야 하는 외지에 자리잡고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경하가 가는 날, 몇 년만의 폭설이 제주를 삼킨다. 버스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인선의 집. 그 집에 가는 길에 발이 미끄러져 순간 정신을 잃기까지 한다. 무에 한다고 이다지도 집에 가는 여정을 길고도 상세하게 그릴까 싶었다.

나중에서야 인선에게서 어머니의 오빠가 학살을 당했다라는 것을 듣게 된다. 아니 정확히는 오빠가 끌려갔고, 교도소를 전전하면서 아무래도 결국에는 총살을 당하지 않았을까, 짐작하게 된다. 학살의 과정에서 유일하게 빠져나와 홀로 민가의 어느 집을 찾았다는 어떤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그가 어머니의 오빠가 아니었을까, 짐작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니까 폭설 속에서 경하가 인선의 집을 찾아가는 과정은 흡사 그 남자의 행로를 떠올리게 한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인선은 어쩌자고 겨우 앵무새를 살리겠다고 이런 혹한에 나를 내몰았을까, 그러니까 이유도 알 수 없이 왜 우리들은 학살당해야만 했을까.

사실 작년 하반기부터 앓아온 난독증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기도 했거니와 한강 특유의 시적인 문체 탓에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다(어머니의 오빠인지, 남동생인지, 삼촌인지조차 헛갈릴 정도니까). 하지만 느낌만으로도 책이 읽혔다. 한강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텍스트를 앞뒤로 옮겨가며 낱낱이 해부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책을 읽으면서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뻗어 나오는 하얀 손, 가느다랗고 길다란 손가락.

그 손과 손가락이 자주 아우성친다. 우리가 왜 죽어야만 했냐고.

정치적인 상황과 당시의 정황을 두루 살핀다면 어떤 관점에서는 당시의 폭력은 정당화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강은 폭력 그 자체에 대해 항변한다. 낱낱의 인간에게 있어 삶은 단 한 번일 뿐이니까. 단 한 명이라도 그 시절을 기억하는 한 그들은 영원히 삶과 작별하지 않을 것이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