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정말... 재밌는 소설, 넷플릭스보다 재밌는 소설, 하나를 가져와 봤습니다.
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간
그럼 시작해볼게요! (아! 너무 재미있기 때문에 스포는 거의 없고, 그냥 책소개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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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비밀 사조직(?)이 하나 있다. 이른바 드라마 추천 조직이다. 조직원은 - 나를 포함한 - 딱 두 명. 내가 회장(언제 추대를 받았던가? 그냥 나이 순으로), 다른 조직원이 부회장이다. 최근에 봤던 드라마를 서로 추천해 줘서 윈윈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조직이지만 요새는 빈궁기를 맞이하고 있다. 볼만한 드라마가 별로 없어서 헉헉대고 있던 와중에 부회장이 이 책을 추천했다(드라마 위주로 추천하기는 하지만 책 추천도 서로 많이 하는 편이다).
어디 재미 없기만 해 봐요, 라고 나는 으름장을 놓았고, 부회장은 자신의 말의 무게감 때문에 부담스러워 했다. 처음 몇 장을 넘겼을 때는 음, 일반적인 타임슬립물 정도인가 싶었지만, 30~40페이지를 넘어가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이 빨려 들기 시작했다.
절반을 넘겨서는 어서 퇴근해서 뒷 부분을 읽고 싶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부회장이 한숨을 돌렸다.
고백하건대 이 책을 읽는 동안에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보기는 했지만 압도적으로 이 책을 쥐고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매력적인 이야기라면 화려한 배역과 수준 높은 CG가 아닌 멋대가리 없는 검정 글자만으로도 사람들을 유혹할 수가 있구나, 싶어 영상이 지배하는 시대에 간만에 -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 '희망'을 발견하여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소설은 열여덟 살 난 아들 토드가 집 앞에서 어떤 남자를 칼로 찔러 죽이고, 그 장면을 어머니인 변호사 젤과 아버지 켈리가 지켜보고 있었고, 곧바로 경찰차가 들이닥쳐 토드가 현장범으로 검거가 되면서 시작한다. 술, 마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던, 착한 아들 토드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무엇일까. 충격에 휩싸인 채 겨우 잠이 든 젤. 다음날 아침, 눈을 뜬 젤은 토드가 집에 있는 것을 발견한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남편 켈리에게 토드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하자 켈리는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을 바로보듯 젤을 바라본다. 달력을 확인해 보니 살인이 저지른 바로 전날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정신이 어딘가 나가버렸는가 싶었다. 그날 밤 잠이 들고 깨어보니 젤은 사건이 발생한 2일 전 아침으로 돌아가 있다. 그제서야 젤은 자신이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엊그제 했던 말을 켈리는 똑같이 내뱉고, 젤의 주변에서는 - 그녀가 익히 겪었던 - 똑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젤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어나고 있는 이 기이한 시간 여행을 토드의 살인사건을 막기 위해 사용하기로 결심한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동인에 대해 함구했던 토드. 아들의 살인 동기를 찾아내고 나아가 살인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살인 동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젤은 마주하기 힘든 진실과 맞닥뜨린다. 20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 켈리는 범죄조직과 연루가 되어 있었다. 증거에 입각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변호사인 젤은 지끔껏 왜 한 번도 켈리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을까. 물론 지극히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매년 정기적으로 고향친구들을 만나러 간다는 켈리를 왜 한번도 따라가지 않았고, 그들이 누군인지 단 한번도 묻지 않았던 것일까. 남편 켈리 특유의 - 매력적인 - 블랙유머는 실은 남편이 그 안의 진실을 감추기 위한 연막이었을 뿐이다. 20년 동안 단 한번도 의심하지 못했다니...
한편,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아들 토드에게 제대로 된 사랑 표현을 해 보지 못해서 토드가 삐뚤어진 것이라고 젤은 믿는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간 젤은 아들에게 최대한 그동안 감추었던 마음을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이 소설이 타임슬림을 주된 소재로 하고 있지만, 나는 이 소설이 관통하고 있는 핵심 메시지는 '지금 이순간을 살아라(Seize the Moment)'라고 믿는다.
젠이 과거로 돌아가서 많은 것을 바꿀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녀는 과거에 최대한 손을 대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이미 겪었던 사건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장면들이 더 많이 나온다. 똑같은 사건을 보고도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게 되는 진실이랄까. 살다보면 정확한 증거는 없지만 어떤 '촉'이 올 때가 있다. 아, 저 친구는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라는 묘한 느낌이 나중에 똑- 맞아 떨어지는 경험은 누구나 해 봤을 것이다. 실은 우리는 이성 너머의 어떤 감각(육감)으로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내내 어쩌면 젤은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살인으로 인한 충격으로 일종의 혼수상태에서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타고난 명민한 두뇌와 변호사의 연륜으로 다시 살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굉장히 잘 짜여진 플롯과 소름 돋는 반전에 박수를 치기 전에, 이 책은 - 적어도 나에게는 - '그러니까 눈 돌리지 말고 지금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 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기욤 뮈소의 소설 이후에 이처럼 책에 홀라당 빠져서 읽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매혹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거의 스포를 하지 않겠다.
추가로 책을 보면서 소설 작법에 대해 꽤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학교 1학년 때 도서관에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당시에도) 스티븐 킹이 자신의 소설작법의 비밀을 공개한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책을 우연히 집어 들었다. 물론 이 한 줄을 보고 바로 덮어 버렸지만.
# 작가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두 가지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슬쩍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름길도 없다. - 유혹하는 글쓰기 中
그러면서 플롯 위주의 글쓰기에 대해 거침없는 악담을 퍼붓는다. 작가 자신이 기승전결을 모두 정해놓고, 결말을 모두 알아버린다면 얼마나 따분한 글쓰기겠는가, 라고.
물론 모든 조언에는 반대가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글쓰기를 건축에 비유하면서 글을 쓰기 전에 설계도를 잘 그리라고 조언한다.
이 소설을 덮고 나면 설계단계부터 조밀하게 구성한 완벽한 건축물이 떠오른다. 물론 초고를 완성하고 수많은 보수공사를 했겠지만. 그야말로 전후좌우가 완벽하게 대칭적이라 빈틈이 없는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지금 지루하시나요? 그럼 지금 당장 이 책을 펼쳐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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