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읽은 <그리스인 조르바>
아마도 30대 초중반이었나. 이 책을 손에 처음 쥔 것은. 책은 도끼다, 라는 책에서 이 책을, 아니 니코스 카잔차키스라는 작가를 처음 접했숩나다. 전집을 방불케 할 정도로 그의 세계에 깊이 빠져 들어 전집을 방불케 할 정도로 그의 책을 많이 사 두었고 읽었지만 당시에는 그의 책 중 최고로 꼽히는 <그리스인 조르바>가 어쩐지 읽히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손에 들어온 조르바는 이번에는 그전과는 사뭇 다르게 쉬이 다가왔습니다. 그 이유를 사람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아마도 이제는 읽을 준비가 되었나, 봅니다.
생각보다 두꺼운 책이라 독서 호흡이 꽤 길었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게요^^
**
개차반.
조르바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네 단어로 표현하자면,
여자, 술, 고기, 춤
이다.
그리스인 조르바, 의 화자는 붓다에 심취해 있는 30대의 '나'다.
탄광사업을 위해 크레타 섬에 들어가기는 길에 '나'는 60대의 조르바를 우연히 만난다. 경험이 많은 조르바를 한번에 알아본 '나'는 그를 탄광 인부를 부리는 자리에 고용한다.
크레타섬에 들어간 조르바는 70대의 늙은 여인 오르탕스 부인과 사랑에 빠진다. 젊었을 때는 이름 깨나 날렸던 요부였으나 이제는 이빨도 빠지고 살도 쪄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은 오르탕스 부인에게 조르바는 사랑을 고백한다. 물론 육욕을 위해서.
젊어서 과부가 된 여인 소멜리나를 가만 두는 '나'를 조르바는 꾸짖는다.
# 조르바는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 어느 날 밤 살로니카에서 여자가 같이 자겠다고 기다리는데 안 갔다는 죄목으로 나는 지옥에 떨어질 겁니다." - 그리스인 조르바 中
조르바가 처음부터 여자를 밝혔던 것은 아니었다. 한때 젊은 시절 전쟁에 참가해 국가에 사로잡혀 터키인, 불가리아인들을 마구잡이로 살해했던 일을 알려준다. 한번은 터키인 신부를 살해하고 다음날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어린 아이들을 발견하는데, 바로 전날 조르바가 살해한 신부의 아이들이었다. 조르바는 그때 자신을 온통 사로잡고 있던 국가라는 이념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그때부터 이념이 아니라 인간, 그리고 먹고 마시고 원하는 실제적인 욕구에 따르기로 결심한다.
조르바가 무한하게 욕구를 추구하는 것 같지만, 그가 욕구를 극복하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 "어렸을 때 한 번은 버찌에 미쳐 있었어요. 하지만 돈이 있어야지요. 조금씩만 먹으면 점점 더 먹고 싶어지는 거예요. 밤이고 낮이고 버찌 생각만 했지요. 어느 날, 버찌가 날 데리고 논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한 줄 아시오? 아버지 주머니를 털고 시장으로 달려가 버찌 한 소쿠리를 샀지요. 그걸 단숨에 입에 처넣었어요. 배가 아프로 구역질이 나서 결국 몽땅 토했어요. 그날부터 버찌를 먹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중략) 이게 자유를 얻는 도리올시다. 터질 만큼 처넣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금욕주의 같은 걸로는 안 돼요. 반쯤 악마가 되지 않고 어떻게 악마를 다룰 수 있겠어요?" - 그리스인 조르바 中
조르바가 부활절 즈음에 기독교의 부활을 해석하는 방식도 흥미롭습니다.
# "... 그러다 보면 맛있는 음식을 배에다 잔뜩 집어넣게 되지요. 그걸 다 똥으로 삭혀 내릴 수가 있습니까? 남는 게 있어서 비축이 되었다가 그게 기분이 되고 춤이 되고 노래가 되고 말다툼이 되는 거지요. 그게 바로 부활이라는 겁니다." - 그리스인 조르바 中
조르바의 영향 탓인지, 어느 날 - '나'라는 화자가 자신 안의 붓다와 과부에 대한 욕망과 싸운 지 족히 몇 개월은 지났을 때다 - 과부에게 가고, 아마도 첫경험을 가지게 된다.
# 지난밤의 그 모든 환희가 내 존재의 심연에서 다시 넘쳐 새 물길들을 만들며 퍼져 흘러, 필경은 흙으로 빚어졌을 내 육체라는 대지에 물을 대어 주고 있었다. 누워서 눈을 감고 있노라니 내 존재의 껍질이 터지며서 커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난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영혼이 곧 육체, 훨씬 붓날리고 투명하고 자유롭긴 하지만 역시 육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도 다소 둔하고 긴 여행으로 기진맥진해 있고 물려받은 짐에 짓눌려 있기는 하나 육체 또한 영혼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 그리스인 조르바 中
그렇지만 과부에 대한 외사랑으로 자살을 택한 한 청년으로 동네 사람들이 광기에 휩싸여 - 여자들도 과부의 화려한 외모와 육감적인 몸매 때문에 남자들의 시선이 차지하는 것을 그전부터 못마땅하게 여겨서 호응한다 - 과부는 결국 청년의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조르바가 끝내 막으려고 했지만 한쪽 귀의 일부를 뜯기는 부상을 당하게 된다. 게다가 얼마 있지 않아 결혼을 앞두고 있던 오르탕스 부인이 시름시름 앓더니 결국에는 죽고 만다. 아무리 술과 고기를 좋아라 하는 조르바지만 그날만큼은 풀이 죽어서 신의 존재에 대해 '나'에게 묻는다. 두목(*조르바를 '나'를 고용주라는 의미에서 '두목'이라고 부른다)은 평생 책을 많이 읽었으니 알지 않냐고, 알면 대답해 달라고 말이다. 항상 내세의 세계나 신의 존재에 대한 담론이 쓰잘데기 없는 것이라고, 우리는 - 어디서 왔는지 이유는 몰라도 - 그냥 개뼈다귀가 던져져 있으니 그걸 맛있게 먹는 존재라고 주장했던 그 조르바가 말이다.
# "두목, 어디 한번 들어봅시다. (중략)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이쓴 걸까요? 누가 이들을 창조했을까요? 왜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략) 왜 사람들은 죽는 것일까요?"
"모르겠어요, 조르바." 내가 대답했다. 부끄러웠다. 가장 단순한 질문, 가장 기초적인 질문을 받고도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 같아서였다.
"모르신다!" (중략)
"아니, 두목, 당신이 읽은 그 모든 빌어먹을 책들... 그것들은 대체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건 왜 읽어요? 책이 그런 걸 알려 주지 않으면 도대체 뭘 알려 주는데요?" - 그리스인 조르바 中
# 조르바의 침묵 때문에, 영원하고도 부질없는 질문들이 다시 한 번 내 내부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다시 한 번 내 가슴은 고뇌로 차올랐다. 세상이란 무엇일까? 나는 궁금했다. 세상의 목적은 무엇이며, 무슨 수로 우리가 하루살이 같은 목숨을 달고 세상의 목적을 이루는 데 기여할 수 있을가? 조르바에 따르면, 인간이나 사물의 목적은 쾌락을 창조하는 것이다. 혹자는 정신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한 차원 위에서 보면 똑같은 말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왜? 무슨 목적으로? - 그리스인 조르바 中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탄광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자, 결국 '나'와 조르바는 헤어지게 된다. 헤어지게 되면 직감적으로 '영원히' 이별하게 됨을 서로 인지하게 된다.
몇 차례의 편지를 주고 받는다. '나'는 조르바가 알려준 금욕의 방법을 책에 적용하여 물리도록 책을 읽어보기로 하고, 조르바는 여전히 개차반 같은 생활을 하며 산다. 타지에서 많은 여인들과 사랑하고, 개중에 아이도 낳으면서. 조르바의 한 전보가 도착한다.
# <멋진 녹암을 찾았음. 즉시 오시오. 조르바.> - 그리스인 조르바 中
그렇지만 '나'는 정중하고 차가운 논리로 못 가는 경위를 알리는 답장을 보낸다.. 조르바가 다시 전보를 날린다.
# <두목, 이런 말을 해서 어떨지는 모르지만 당신은 가망 없는 펜대 운전사올시다. 평생에 한 번이라도 그 아름다운 녹암을 봐야 하는 건데, 당신을 보지 않았어요. 젠장, 일이 없을 때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지옥은 있을까, 없을까? 그러나 어제 당신의 편지를 받고 나는 말했어요. 두목 같은 펜데 운전사를 위해 반드시 지옥이 있어야 한다!> - 그리스인 조르바 中
그게 조르바의 마지막 편지였다. 시간이 꽤 흘러 전보가 온다. 조르바의 임종을 알리는 편지였다. 그가 기분이 좋을 때 늘 연주하던 산투르(이란의 전통악기)를 '나'에게 남겼다.
# "선생님, 이리 좀 오시오. 내겐 그리스에 친구가 하나 있소. 내가 죽거든 편지를 좀 써주시어, 최후의 순간까지 정신이 말짱했고 그 사람을 생각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그리고 나는 무슨 짓을 했건 후회는 않더라고 해주시오. 그 사람의 건투를 빌고 이제 좀 철이 들 때가 되지 않으냐고 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잠깐만 더 들어요. 신부 같은 게 내 참회를 듣고 종부 성사를 하러 오거든 빨리 꺼지는 건물론이고 온 김에 저주자 잔뜩 내려 주고 꺼지라고 해요! 내 평생 별짓을 다 해보았지만 아직도 못한 게 있고. 아, 나 같은 사람은 천년을 살아야 하는 건데.... 안녕히 주무시요!" - 그리스인 조르바 中
그리고 조르바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가로 갔다. 거기서 조르바는 창틀을 거머쥐고 먼 산을 바라보다 눈을 크게 뜨고 웃다가 말처럼 울다가, 창틀에 손톱을 박고 서서 죽었다. 과연 조르바답게도.
그리스인 조르바의 교훈으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게 이 말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이 말보다 식상한 말이 있을까?
과거에 대한 회한에서 벗어나고 미래에 대한 불안, 걱정을 휩싸이지 말고 살아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던 조언이다.
단순히 이런 교훈을 던져주기 위해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 소설을 썼을까?
조르바도 니코스가 여행하는 중에 만난 실존인물을 모델로 했다고 하니,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소설 속의 '나'에 가까울 것이다.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경험으로 실득하기 위해 다양한 나라를 여행했던(실제로 기행문을 많이 남겼다) 니코스가 소설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약 2주 동안 조르바의 행적을 따라 살아봤다.
# “지금 나는 닭고기와 계피 뿌린 육반을 생각하고 있어요. 내 머릿속은 갓 쪄낸 육반처럼 김이 무럭무럭 납니다. 먼저 먹읍시다. 먼저 배를 채워 놓고 그 다음에 생각해 봅시다. 모든 게 때가 있는 법이지요.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건 육반입니다. 우리 마음이 육반이 되게 해야 합니다. 내일이면 갈탄광이 우리 앞에 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 마음은 갈탄광이 되어야 합니다 어정쩡하다 보면 아무 짓도 못 하지요.” - 그리스인 조르바 中
눈 앞에 치킨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한 자리에서 꼬박 6시간을 앉아서 맥주를 아마 20잔은 족히 마셔댔을 것이다. 물론 그 순간은 행복했다. 하지만 다음 날 쏟아지는 숙취로 온전히 그 날을 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돌려 말하면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라는 대명제에 동의를 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 진의의 한 톨도 제대로 건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
오늘 오후 2시 정도에 책을 덮었습니다. 몇 편의 독서리뷰를 찾아봤습니다. 대다수 비슷한 말(지금 이순간을 살아라, 개처럼 살아라 등에서 니체의 초인사상까지)을 했습니다. 이런 뻔한 말을 하려고 과연 니코스는 이 책을 남긴 것일까요?
더 깊은 무언가를 남기려고 했던 것인데, 어쩌면 우리는 조르바가 국가라는 '이념'에 사로잡혀 있던 시절과 비슷하게 이미 굳은 해석으로 존재하는 기존의 시각으로만 이 책을 읽어내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물론 아직까지 저도 찾고 있습니다. 구더기가 들끓는 시신의 해석보다는 바로 눈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육반과 같은 해석을 말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해석을 해 보시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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